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 사건의 내막은?
흥미있는 스토리와 함께하는 피렌체 미션 투어

'메디치가문의 줄리아노'에 관한 스토리 투어는 피렌체의 주요
관광명소를 여행할 수 있는 미션투어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유럽을 충격에 빠트렸던
정치 스캔들의 내막을 파해치기 위해
피렌체로 떠나볼까요?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 사건의 내막은?
흥미있는 스토리와 함께하는 피렌체 미션 투어
'메디치가문의 줄리아노'에 관한 스토리 투어는 피렌체의 주요
관광명소를 여행할 수 있는 미션투어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유럽을 충격에 빠트렸던
정치 스캔들의 내막을 파해치기 위해
피렌체로 떠나볼까요?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 사건의 내막은?
흥미있는 스토리와 함께하는 피렌체 미션투어
'메디치가문의 줄리아노'에 관한 스토리 투어는 피렌체의 주요
관광명소를 여행할 수 있는 미션투어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유럽을 충격에 빠트렸던
정치 스캔들의 내막을 파해치기 위해
피렌체로 떠나볼까요?
Giuliano de' Medici
피렌체 귀족가문 메디치의
엄친아 줄리앙
비너스, 아그리파와 함게 우리나라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최근까지 미대 입시의 필수 관문이던 석고 데생의 모델인 줄리앙입니다. 아름다운 곱슬머리에 계란형 얼굴과 완벽한 비율의 몸을 가진 말 그대로 ‘조각 미남’의 원조입니다. 줄리앙이라는 프랑스 이름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사실 프랑스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그것도 너무나도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후계자였죠. 그의 진짜 이름은 ‘줄리아노 데 메디치’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라는 뜻이지요. 어쩌다 피렌체 명가의 후손인 그가 이 머나먼 이국땅 한국에서 미술학도의 스케치 대상이 되었을까요
Who is the Giuliano de' Medici
입시 미술 소묘에 자주 보는
줄리앙은 누구?
줄리아노(줄리앙) 석고상의 원본은 피렌체 '메디치 예배당‘에 있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무덤에 있는 조각상이며 제작자는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미켈란젤로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이자 천재인 미켈란젤로가 만든 이 조각상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분위기와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세밀하게 묘사된 곱슬머리에 비현실적으로 긴 목을 가진 미소년 조각상이기에 미술학도의 데셍 실력을 평가하는데 좋은 예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원작은 전신 조각상으로 줄리아노는 풍체좋은 장군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안타깝게 죽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줄리아노에게는 어떠한 사연이 있었을까요?
Brothers of the Medici who led the Renaissance
르네상스와 피렌체의
전성기를 이끈
메디치가(家)의 형제
줄리아노는 메디치 가문 후계자의 동생으로 수려한 외모로 유명했고 마상 창시합에서 우승을 하는 등 다양한 재능도 있어서 피렌체 시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형은 메디치 가문을 최고의 전성기로 이끈 로렌초 메디치 입니다. 로렌초는 피렌체의 문화 발전을 위해 거대한 후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미켈란젤로이고 보티첼리의 유명한 역작인 비너스의 탄생 역시 로렌초의 후원의 결과입니다. 나중에는 피렌체와 르네상스,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끈 업적을 인정받아 ’위대한 자‘의 호칭을 얻기도 했죠. 이렇듯 명문가의 후계자이자 뛰어난 재능을 통해 모든 것을 다 기진듯한 그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형 로렌초는 20살 어린나이에 가문의 수장이 되었고 동생인 줄리아노와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메디치 가문을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
Medicine VS Anti-Medicine
메디치 VS 반메디치
그러나 메디치 형제가 가문이 수장이 된지 얼만 안된 1478년 4월 이탈리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발생합니다. 메디치 가문의 정치 독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반대파인 ’파치가문‘과 교황령을 넓히고 싶어했던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고 그렇게 교황의 지원 속에 파치가문은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음모를 계획하게 됩니다.
Murder in Duomo Cathedral
다가오는 피의 4월
피렌체 두오모성당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교황의 힘을 업은 이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건 바로 메디치 가문을 이끌고 있는 형 로렌초와 동생 줄리아노를 모두 암살하는 것이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대를 끊기 위해 두 형제 모두를 죽이는 것이 파치가문의 목표였습니다. 메디치의 두 형제를 한꺼번에 제거하기 위해 음모 실행의 시간과 장소를을 부활절 미사가 진행되는 피렌체 대성당으로 정했습니다.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라 두 형제가 모두 참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아침, 사람들이 대성당으로 모였습니다. 로렌초를 비롯한 귀족들과 살비아티 대주교는 앞자리에 앉았다. 늦게 도착한 줄리아노는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엄숙한 가운데 성가가 울려 퍼졌고 미사는 마지막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파치가문의 암살자들은 서서히 로렌초와 줄리아노에게 다가갔습니다. 미사의 마지막 순간, 암살자가 품에서 칼을 꺼내 줄리아노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비명을 들은 로렌초는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에게도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암살자의 공격은 로렌초의 귀를 살짝 스쳤고 다음 공격이 이어졌지만 곧 로렌초의 호위병과 친구들이 암살자를 막아 섰습니다. 로렌초는 동료들에 둘러싸여 적들을 피해 성물 안치소로 대피해 참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Creation of a masterpiece
부활절의 피,
그리고 탄생하게된 걸작
결국 파치 가문의 음모는 실패로 끝났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로렌초는 동생 줄리아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조각가에게 의뢰하여 무덤을 만들었고, 그 무덤의 조각상이 미술학도의 애증의 대상이 된 줄리앙 석고상이 되었습니다. 줄리아노의 석상이 뒤를 돌아 보고 있는 것은 성당에서 파치가문의 암살자가 줄리아노의 이름을 불렀고 때문에 뒤를 돌아보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The decline of the Renaissance
관용과 포용이 아닌
공포와 복수,
그리고 저무는 르네상스
이 사건 이후 형 로렌초는 파치가문에 대한 복수를 실행하게 됩니다. 파치가문 일원들 대부분 살해 당하거나 추방 당했고 그들의 흔적이 남는것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무장 호위병을 거느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때문에 시민들에게 메디치 가문은 법 위에 존재하며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공포의 대상이자 군주로 인식되어 갔습니다. 물론 로렌초는 예술과 철학에 대한 지원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메디치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안 되고 메디치의 위대함을 찬양해야 했습니다. 자연히 르네상스의 핵심인 자유로운 시민 정신은 점차 시들어갔고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때부터 피렌체 르네상스가 저물기 시작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피렌체를 떠난 르네상스는 로마와 베네치아를 거쳐 알프스 이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Special Story mission tour
인솔자와 함께
메디치家의 피렌체를 탐험하는 여행
'줄리아노' 암살의 진실을 찾아서
피렌체의 상징이고 그리고 그 거대한 아름다움 때문에 피렌체를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인 피렌체 두오모로도 잘 알려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이곳에서 벌어진 르네상스 시절 가장 큰 정치 스캔들을 추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유로메이트와 함께 유럽의 역사속 다양한
스토리와 이야기속 주인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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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uliano de' Medici
피렌체 귀족가문 메디치의
엄친아 줄리앙
비너스, 아그리파와 함게 우리나라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최근까지 미대 입시의 필수 관문이던 석고 데생의 모델인 줄리앙입니다. 아름다운 곱슬머리에 계란형 얼굴과 완벽한 비율의 몸을 가진 말 그대로 ‘조각 미남’의 원조입니다. 줄리앙이라는 프랑스 이름으로 알려진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사실 프랑스사람이 아닌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그것도 너무나도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후계자였죠. 그의 진짜 이름은 ‘줄리아노 데 메디치’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라는 뜻이지요. 어쩌다 피렌체 명가의 후손인 그가 이 머나먼 이국땅 한국에서 미술학도의 스케치 대상이 되었을까요
Who is the Giuliano de' Medici
입시 미술 소묘에 자주 보는
줄리앙은 누구?
줄리아노(줄리앙) 석고상의 원본은 피렌체 '메디치 예배당‘에 있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무덤에 있는 조각상이며 제작자는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미켈란젤로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이자 천재인 미켈란젤로가 만든 이 조각상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분위기와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세밀하게 묘사된 곱슬머리에 비현실적으로 긴 목을 가진 미소년 조각상이기에 미술학도의 데셍 실력을 평가하는데 좋은 예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원작은 전신 조각상으로 줄리아노는 풍체좋은 장군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안타깝게 죽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과연 줄리아노에게는 어떠한 사연이 있었을까요?
Brothers of the Medici who led the Renaissance
르네상스와 피렌체의
전성기를 이끈
메디치가(家)의 형제
줄리아노는 메디치 가문 후계자의 동생으로 수려한 외모로 유명했고 마상 창시합에서 우승을 하는 등 다양한 재능도 있어서 피렌체 시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형은 메디치 가문을 최고의 전성기로 이끈 로렌초 메디치 입니다. 로렌초는 피렌체의 문화 발전을 위해 거대한 후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후원을 받은 예술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미켈란젤로이고 보티첼리의 유명한 역작인 비너스의 탄생 역시 로렌초의 후원의 결과입니다. 나중에는 피렌체와 르네상스,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끈 업적을 인정받아 ’위대한 자‘의 호칭을 얻기도 했죠. 이렇듯 명문가의 후계자이자 뛰어난 재능을 통해 모든 것을 다 기진듯한 그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형 로렌초는 20살 어린나이에 가문의 수장이 되었고 동생인 줄리아노와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메디치 가문을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
Medicine VS Anti-Medicine
메디치 VS 반메디치
그러나 메디치 형제가 가문이 수장이 된지 얼만 안된 1478년 4월 이탈리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발생합니다. 메디치 가문의 정치 독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반대파인 ’파치가문‘과 교황령을 넓히고 싶어했던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고 그렇게 교황의 지원 속에 파치가문은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음모를 계획하게 됩니다.
Murder in Duomo Cathedral
다가오는 피의 4월
피렌체 두오모성당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교황의 힘을 업은 이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건 바로 메디치 가문을 이끌고 있는 형 로렌초와 동생 줄리아노를 모두 암살하는 것이었습니다. 메디치 가문의 대를 끊기 위해 두 형제 모두를 죽이는 것이 파치가문의 목표였습니다. 메디치의 두 형제를 한꺼번에 제거하기 위해 음모 실행의 시간과 장소를을 부활절 미사가 진행되는 피렌체 대성당으로 정했습니다.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라 두 형제가 모두 참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아침, 사람들이 대성당으로 모였습니다. 로렌초를 비롯한 귀족들과 살비아티 대주교는 앞자리에 앉았다. 늦게 도착한 줄리아노는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엄숙한 가운데 성가가 울려 퍼졌고 미사는 마지막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파치가문의 암살자들은 서서히 로렌초와 줄리아노에게 다가갔습니다. 미사의 마지막 순간, 암살자가 품에서 칼을 꺼내 줄리아노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비명을 들은 로렌초는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에게도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암살자의 공격은 로렌초의 귀를 살짝 스쳤고 다음 공격이 이어졌지만 곧 로렌초의 호위병과 친구들이 암살자를 막아 섰습니다. 로렌초는 동료들에 둘러싸여 적들을 피해 성물 안치소로 대피해 참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Creation of a masterpiece
부활절의 피
그리고 탄생하게된 걸작
결국 파치 가문의 음모는 실패로 끝났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로렌초는 동생 줄리아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조각가에게 의뢰하여 무덤을 만들었고, 그 무덤의 조각상이 미술학도의 애증의 대상이 된 줄리앙 석고상이 되었습니다. 줄리아노의 석상이 뒤를 돌아 보고 있는 것은 성당에서 파치가문의 암살자가 줄리아노의 이름을 불렀고 때문에 뒤를 돌아보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The decline of the Renaissance
관용과 포용이 아닌
공포와 복수,
그리고 저무는 르네상스
이 사건 이후 형 로렌초는 파치가문에 대한 복수를 실행하게 됩니다. 파치가문 일원들 대부분 살해 당하거나 추방 당했고 그들의 흔적이 남는것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무장 호위병을 거느리고 다녔다고 합니다. 때문에 시민들에게 메디치 가문은 법 위에 존재하며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공포의 대상이자 군주로 인식되어 갔습니다. 물론 로렌초는 예술과 철학에 대한 지원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메디치의 비위를 거슬러서는 안 되고 메디치의 위대함을 찬양해야 했습니다. 자연히 르네상스의 핵심인 자유로운 시민 정신은 점차 시들어갔고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때부터 피렌체 르네상스가 저물기 시작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피렌체를 떠난 르네상스는 로마와 베네치아를 거쳐 알프스 이북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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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노' 암살의 진실을 찾아서
피렌체의 상징이고 그리고 그 거대한 아름다움 때문에 피렌체를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인 피렌체 두오모로도 잘 알려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이곳에서 벌어진 르네상스 시절 가장 큰 정치 스캔들을 추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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